[제 목] 유랑에세이 - 몽골(3)
 [작성자] 이윤기
 [작성일]
 [화 일] 화일없음
  유랑에세이 - 몽골(3)
2003년 6월 말,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브얀트 오하 공항으로 갔다. 헬리콥터가 기
다리고 있었다. 붉은 헬리콥터였다. 동체에 선명하게 키릴 문자로 ‘텡게린 울란’이라는 이름이 쓰
여 있다. ‘하늘의 붉은 새’다. 몽골 국적 ‘미아트’ 항공사에 소속되어 있는 조종사와 동승할 엔지니
어, 정비 기술자가 말쑥하게 정장하고 있었다. 기체도 그렇게 완벽하게 정비되어 있을 것 같아 마
음이 놓였다.

헬리콥터에 올라 안전 띠를 매고 이륙을 기다렸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는 조종사가 엔진을 시동
한다고 해서 금방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2, 3초 동안 귀에 매우 거슬리는 고음의 금속성이 난 다
음에야 프로펠러가 움직인다. 그런데 그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목이 메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얀 헬리콥터’라는 단편소설로 문단에 데뷔한 사내가 33년 만에 다시 타 보는 빨간 헬리
콥터였다.

33년 전에는 헬리콥터에 자주 올랐다. 베트남 땅에서는 요즘 서울에서 콜택시 타듯이 헬리콥터를
자주 탔다. 완전무장하고 탔다. 베트남에서 프로펠러 돌기 전에 들려오는, 그 귀에 거슬리는 고음
의 금속성을 들을 때마다 살아서 다시 헬리콥터 타고 돌아올 수 있을까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
니다. 그 소리를 33년 만에 다시 들은 것이다. 공포의 기억이 세월을 되돌려 놓는 것 같았다. 하지
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그랬다.

아, 여기는 베트남이 아니지, 나는 이제 전투병이 아니지…. 동그란 현창(舷窓)을 통해 밖을 내다
보고 있는 사내는 이제 철모 쓴 전투병이 아니었다. 백발의 중늙은이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
나 헬리콥터에 가지고 오른 장비는 비슷했다. 배낭이, 열개의 주머니가 달린 가죽 조끼로 바뀐 것
뿐이다. 소총과 로켓 포는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로, 소총 실탄은 필름과 건전지로, 군용 폰
초 우의(雨衣)는 미국제 등산용 ‘콜먼’ 비옷으로, 수통은 생수병으로, 전투 식량 ‘C 레이션’은 몽골
화폐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투 장비 무게에 견주어 촬영 장비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지는 않았다.
노병(老兵)의 체감 중량이 그랬다.

그 넓은 땅에서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만 한 해 전인, 2002년 7월의 몽골 여행 경험이 결론을 내리
는데 도움을 주었다. 울란바토르에서 겨우 200여㎞ 떨어져 있는 몽골 제국의 첫 수도 하라호룸을
다녀오는데 만 이틀이 걸렸다. 몽골 인들에게 거룩한 산인 보르항 산 다녀오는데는 만 나흘이 걸
렸다. 여름이라서 초원 길이 몹시 질척거렸다. 빌려서 타고 간 러시아제 지프 ‘자린유스’ 바퀴가 자
주 진창에 빠졌다.

그 바람에 보르항 산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멀찍이서 올려다보고는 사진 찍고 돌아서는 수밖
에 없었다. 알타이 산맥을 넘어 보자면 두 주일 일정은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고비 사막을 다녀
오자면 두 주일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몽골 인들 마음의 성소 보르항 산을 가까이서 보고 싶
었다. 그 산중의 이깔나무와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었다. 고비 사막도 다녀오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알타이 산맥을 넘고 싶었다. 알타이 산맥의 자락이나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들
여다 보고 싶었다. 북서부의 호수 지대에 사는 몽골 인들도 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1만㎞ 가까이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문제는 이동 수단의 기동성이었다. 1만㎞는 하루 이동 거리 200~
300㎞가 고작인 자동차의 기동성으로는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달리는 말에서 활쏘는 모습 고구려인 보는 듯

몽골에서 내가 관찰하고자 한 것 중의 하나가 유목민의 기동성이다. 내가 눈을 대는 곳은 13세기
몽골 제국의 성립을 가능하게 했던, 이동 수단의 물리적 기동성이기도 하고 높은 기동성을 항상
가능하게 하는 그들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소유의 물량은 기동성에 반비례한다.

조(趙) 나라 무령왕(武靈王)이 ‘호복기사(胡服騎射)’를 극구 장려한 것은 기원전 3세기의 일이다.
흉노족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보다 못해 내어놓은 무령왕의 고
육지책이다. 호복기사는 ‘말 타고 싸우기 좋은 오랑캐의 옷 입기와 달리는 말 잔등에서의 활쏘기’
다. 오랑캐 옷은 바로 기동성을 으뜸으로 치는 유라시아 유목민의 옷, 말 달리며 활쏘기는 바로 기
원전 3세기 쯤, 중앙 아시아 유목민들과 교류하던 파르티아 식 활쏘기(Partian shaft)인 것 같다.

그는, 황하인(黃河人)들의 긴 두루마기와 너무 넓은 소매가 기동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활을 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파르티아 식 활쏘기란 말을 탄 채 몸을 틀어 뒤따라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는 사법(射法)이다. 이런 식으로 활을 쏘는 모습은 중국의 1세기 화상전, 즉 벽
돌 그림에도 등장하고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한다. 나는 등자(뜔子)가 12세기나 되어서야 등
장했다
는 서양 역사가들의 주장을 신용하지 않는다. 등자에 발을 대지 않고는 파르티아 식 활쏘기가 가
능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무령왕은 농경민이 유목민의 기동성에 짓밟힐 것임을 천년 전에
예감한 선각자였던 것 같다.

13세기의 몽골 인들의 높은 기동성을 보장해준 것은 말이었다. 몽골 인들이 걸음마보다 말타기를
먼저 배운다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하지만 이들의 기동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고려인들이 말 타고 견마 잡히고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을 때 그들은 질풍처럼 초원을 내
달았다. 한 마리 말에만 의지했던 것도 아니다. 두 마리의 말을 번갈아 가면서 타고 달렸다.

그들의 먹을거리는 육포(肉脯)였다. 몽골 인들의 육포 가공 기술 수준은 500㎏의 쇠고기를 30㎏으
로 가공하여 양의 몸에서 떼어낸 방광에 고스란히 집어넣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의 중요한 마
실거리는 말젖이었다. 그들은 말젖을 양가죽 부대에 넣어 말 잔등에 싣고는, 이것을 깔고 앉은 채
로 말을 달렸다. 이렇게 며칠을 깔고 앉아서 뭉개면서 달리면 말젖은 몽골 인의 엉덩이 밑에서 스
스로 발효, 말젖술이 되었다고 한다.

평균 70㎏에 이르는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한 13세기의 유럽의 기병을 짓밟아 버린 것은 바로 7㎏
의 경량화한 무기로 가볍게 무장한 몽골의 경기병이었다. 유라시아는 몽골 인들의 기동성에 짓밟
힌 것이다.

몽골 인들이 오축(五畜), 곧 다섯 가지 가축이라고 부르는 것은 양, 소, 염소, 낙타, 말이다. 그들
은 돼지나 닭이나 오리 같은 것은 거의 기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스스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기
동성이 없기 때문이다.

기동성은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기동성을 떨어뜨리는 물건은 소유
하지 않으려고 한다. 두 주일 정도의 해외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20분이면 충분하다.
나의 노트북 컴퓨터와 두 대의 카메라는 5분대기조의 소총과 같아서 언제든 들고 뛰어 나갈 수 있
게 준비되어 있다.

나는 유목민처럼 다목적에다 다기능을 아우르는 단 한 벌의 옷을 며칠이고 줄기차게 입는다. 나
는 며칠 동안 샤워하지 않고도 잘 잠들 수 있다. 농경정착민의 피가 오래 흐르던 내 핏줄 속에서
아무래도 유목민의 피, 알타이 인자(因子)가 잠을 깨고 있는 것 같다. 내 탓인지, 시대 탓인지.


        



관련글보기

제목 작성자 날짜
유랑에세이 - 몽골(3) 이윤기
     

Copyright (c) 2001~ Dui-kore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