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유랑에세이 - 몽골(2)
 [작성자] 이윤기
 [작성일]
 [화 일] 화일없음
  유랑에세이 - 몽골(2)
“무지개 나라” 따뜻한 이름으로 한국을 부른다

올해 2월에는 그리스와 이집트를, 7월에는 몽골을, 8월에는 중국을 여행했다. 나 같은 사람 때문
에 우리나라의 여행수지 적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는 것 같아서 늘 미안하다. 그러나 세 차례 여행
에서 내가 사들여온 책이 100여 권, 찍어온 사진이 1만여 장이다. 이로써 나는 독자들로부터나마
면죄부를 얻었으면 한다.

8월의 중국 여행은 조금 특별했듯이 나와 한문과의 관계도 조금 특별하다. 네댓 살 무렵에 천자문
을 떼고 초중급 한문 서적을 읽었다. 20대에는 사서삼경의 맛을 두루 보았다. 30대에는, 생업과 밀
접한 관계가 있는 언어는 영어였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의 이름난 고전을 열심히 읽었다.

4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는 미국에서 당시(唐詩)와 송사(宋詞)를 많이 읽었다. 중국 위진남북
조 시대의 문사철(文史哲)을 아우르는 책 ‘세설신어’와 신괴소설 전집인 ‘요재지이’를 한 해 동안
집중적으로 독파하기도 했다. 이 수지 적자도 한번 따져 봐야 한다. 무역에 견준다면 수출은 언감
생심, 일방적인 수입이었다.

지난 7월. 내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 대해서 쓴 책 두 권을 중국에서 번역 출간하고 싶다고 했
다. 드디어 중국이라는 대양에 읽을거리를 두 권 보태는구나 싶어서 자랑스러웠다. 8월에는 중국
에서 저자가 직접 베이징으로 와서 ‘조인식’이라는 것에 참가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중국 작가협회의, 강당같이 넓은 ‘조인식’ 현장은 흡사 두 나라 정부간의 문화협정 체결 현장 같았
다. 축사와 연설이 이어졌다. 내게도 차례가 왔다. 나는 나의 오래된 중국 문화 짝사랑을 그 자리
에서 고백했다. 그토록 오래 중국을 짝사랑하고 중국의 문화를 읽어오던 사내가 드디어 중국인들
에게 초라하나마 읽을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하다 보니 콧날이 시큰했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2001년에는 시안(西安)에서 우루무치에 이르는 기나긴 실크로드를, 시안에
서 베이징(北京)에 이르는 역시 기나긴 여로를 자동차로 각각 주파했는데 두 차례에 걸친 자동차
여행도 사실은 중국 신화의 현장 답사와 촬영이 그 목적이었다는 것을 고백했다. 그런데 그 대목
에 이르자 중국인들이 술렁거렸다. 동석해 있던 10여명의 중국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기자는 질문하기보다는 반성하겠다면서 한국인이 쓴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 중국인으로서는 몹시 부끄럽다고 했다. 그는, 자기 나라인 중국 신화의 정리 작업까지 한국
인에게 맡기게 된 것이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 민감한 반응에 약간 당황했던 나는 회견이 끝난 뒤의 만찬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따로 설명하
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날 밤 기자들에게 내가 설명한 내용은, 내가 왜 중국과 몽골을 한동안 더
떠돌아야 하는지 그 까닭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사는 중국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도 중국의 한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신화나 민담은 국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에 속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든, 문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든, 언어를 통해 전해지는 신화나 민
담의 진화·퇴화 과정은 한 민족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한문에 실려 중국에서 넘어온 이야기의 많은 파편은 우리 문화에 묻어 우리 것으로 육화하기도 했
고 때로는 우리 정서와 어울리지 못하고 퇴화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장구한 세월 단일한 민
족 국가로 중국 문화 쪽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 문제는 중국이다. 우리가 ‘중국’이라고 불러온 나라
는 단일한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이렇게 국가의 이름이 바뀔 때마다 몽
골족, 한족, 만주족, 이런 식으로 지배 계급의 민족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중국이라는 국가를 지배한 경험을 지닌 민족들의 신화와, 지금 ‘중
국 신화’라고 불리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한 것이지, 중국인들을 대신하여 중국 신화를
정리하자는 것이 아닌 것이다. 원나라를 세워 근 한 세기 중국을 지배했고, 우리에게도 신산스러
운 세월을 살게 했던 몽골족의, 낯익어 보이는 신화와 민담을 기웃거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다. ‘낯익음’을 열쇠말로 삼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약 세 시간 비행거리에 있는 몽골은, 우리나라를 침략한 북방 오랑캐 ‘몽고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
는 나라, 맞다. 그러나 ‘몽고(蒙古)’는, 원나라 시대 몽골인들에게 호되게 휘둘린 적이 있는 중국
이 붙인 이름이다. ‘어리석고 후진 인간들이 사는 나라’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몽골’은 ‘사
람 중의 사람이 사는 나라’라는 뜻이란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 즉 ‘무지개 나라’라는 따
뜻한 이름으로 부른다. 내 뇌리에는 중학교 역사책의 ‘몽고족의 침략’을 통해 습득한, 어두운 몽골
족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었다.

들꽃향기 흩날리는 아침 한약달이는 냄새 밥상엔 쌀밥과 김치가… “대통령 조반도 이렇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내가 여행해본 나라 중에서 정서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 가장 더럽혀지
지 않은,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였다. 지난 여름 몽골의 한 특별한 숙소에서 맞은 아침을 나
는 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서늘한 아침 바람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었다. 들꽃들이 다투어
향기를 흩날리는지, 아침 바람에서 한약 달이는 냄새가 났다. 아침 밥상에는 쌀밥과 김치가 올라
와 있었다.

시중드는 이에게, 몽골인들이 김치를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김치를 좋아하는 대통령께서 아
침마다 드시는 것으로, 우리를 위해 특별히 내놓는 것이라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대통령께서도 지금 아래층에서 여러분과 똑같은 조반을 들고 계십니다.”

나는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몽골의 바가반디 대통령을 두 번 뵙는 행운을 누렸다. 한번은 나담
축제 개막식에 나와 개막을 선언하는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뵈었다. 그날 오후 전통옷으로 차려 입
은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대동하고 손을 흔들면서 관람객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는데 경호가 조금
도 매섭지 않았다. 외국인인 나도 3m까지 접근해서 대통령의 사진을 찍었을 정도다. 나의 몽골인
친구는, 몽골은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 사랑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몽골을 ‘몽고’
라고 부를 수 없다.

중국인들이 몽골인들을 여전히 ‘몽고인’이라고 부르듯이 몽골인도 중국인을 여전히 싸잡아 ‘햐타
드 훈’이라고 부른다. ‘거란인(契丹人)’이라는 뜻이다. 중국을 뜻하는 러시아어 ‘키타이’도 ‘거란’이
라는 뜻이다. 중국인을 좋아하지 않는 몽골인이 중국인을 놀려먹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몽골인이 중국인의 만두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몽골인은 가게 앞에서 만두 냄새를 흠뻑 맡았
다. 몽골인을 어수룩하게 본 중국인이 냄새 맡은 값을 내야 한다고 우겼다. 몽골인은 돈주머니를
꺼내 중국인 코 앞에서, 쩔렁 소리가 나게 한 차례 흔들어 보이고는 도로 넣었다. 중국인이 왜 그
냥 넣느냐고 하자 몽골인이 대답했다.

“나는 만두 냄새만 맡았으니, 당신도 돈 쩔렁거리는 소리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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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에세이 - 몽골(2)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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