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유랑에세이 - 몽골(1)
 [작성자] 이윤기
 [작성일]
 [화 일] 화일없음
  유랑에세이 - 몽골(1)

싼바이노!
소설가 이윤기님이 문화일보에 연재하시는 <이윤기의 유랑에세이 알타이를 찾아서> 라는 칼럼
중 몽골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옮겨싣습니다. .............................. [몽골스쿨닷컴 편집자]
-------------------------------------------------------------------------------------------

친근한 말·몸짓 원초적 낯익음

우리, 언제 어디에서 무엇으로 만났기에?

나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 도시 거리의 간판을 읽으려고 무척 애쓴다. 그래서, 안내하는 사
람을 몹시 성가시게 한다. 비아냥도 자주 듣는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따라서 무상(無常)하다
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언어들을 꼭 읽어야 성에 차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고소롬
한 취미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끝없는 초원, 황량한 사막, 풀 뜯는 가축 무리. ‘몽골’이라는 나라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풍경들이
었다. 하지만 그것은 ‘몽골’이라는 나라의 풍경이지 현대 도시인 수도의 풍경은 아니다. 브얀트 오
하 공항을 벗어나면 곧 수도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펼쳐진다. 수도로 들어가자면, 어느 나라에서
든 볼 수 있는, 고층 건물과 첨단 전자기기 광고판의 숲을 지나야 한다.

2002년 여름, 공항에서 울란바토르로 들어가면서 가만히 보니 그 도시가 내 눈에 설지 않았다. 초
행인데도 불구하고 도시는 내게 너무나 낯익은 도시였다. 이것은 그리스 도시가 아닌가? 어째서
그리스 도시 같아 보이는가? 몽골 말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사내에게 초행인 나라 도시 거리의
간판을 읽는 일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몽골은 한문을 쓰는
나라도, 로마 문자를 쓰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거리의 간판을 떠듬떠듬 읽고 있었다. 그
럴만한 까닭이 있다.

나는 몽골을 위구르 문자를 쓰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는데 1941년부터는 키릴 문자를 쓰고 있단
다. 키릴 문자는 옛 소련에 속해 있던 국가들,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지에서 쓰이는 문자다. 초행
인 내가 거리 간판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문자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문자는 9세기
에 동방 정교회가 슬라브 족에게 파견한 그리스 인 형제가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사도 성 키릴루
스와 메토디우스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슬라브 족 신도들을 위해 문자를 만들면서 바탕으로 삼은 문자가 있다. 바로 9세기에 그들
의 조국 그리스가 쓰던 그리스 어, 신학도(神學徒)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헬라(希臘) 어다. 신학대
학 다닌 경력이 있는 내가 울란바토르 거리의 간판을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몽
골 인들이 추가한 모음이 더러 있고, 형태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키릴 문자에는 알파베타(Α
Β)는 물론, 감마(Γ),델타(Δ), 람다(Λ), 피(Φ)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축물에도 그리스 문화권의 잔영이 짙게 어른거린다. 근대 이후 몽골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정교회가 그리스 정교회의 강력한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러시아 정교
회와 그리스 정교회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몽골에서 그리스 문화의 잔영을 읽고는 낯익다는 느낌
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낯익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학습을 통한 낯익음이다. 그리스
문화 읽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은 느끼기 어려운 낯익음이다.

나는 어느 나라에 가든지 꼭 그 나라 노래를 한곡쯤 배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동할 때면 그 나
라 노래 카세트 테이프를 기어이 하나 사서 틀게 함으로써 안내하는 사람을 몹시 성가시게 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늙은 소인배라는 비아냥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나는 이 쾌적한 취미 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몽골 제국의 옛 수도 하라호룸(카라코룸)으로 가던 길이었다. 몽골인 친구가 소련 제 지프에서 틀
어준 카세트 테이프의 노래들이 귀에 익었다. 그 중에서도 ‘미니 아아브 아도칭 훈(나의 아버지는
말 치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귀에 익었다. 몇 차례 듣고부터는 따라 불렀다. 가볍게 걷는 말 잔등
위에서, 기분 좋은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부르면 좋을 듯한 빠르기, 한을 가슴에다 간직하는 대신
바람에 흩날려 버리는 듯한 그 가락이 좋았다. 끝없이 아득했다. 그날 오후 내내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몽골 인 운전기사는 6척 장신의 거구였다. 남산만한 배를 러시아 제 지프의 핸들에다 댄 채로 운전
했다. 살살 꾀어서 전직을 물었더니 씨름 선수였단다. 밤이 되고 초원의 천막집 게르에 들게 되었
다. 술을 권하자 그는 우리가 윗사람 앞에서 그러듯이 왼손을 오른손 손목에 대면서 오른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받았다. 그러고는 술잔을 왼손으로 옮긴 다음, 오른 손 중지로 술을 찍어 하늘로 튀
기면서 나지막하게, 텡그리, 하고 속삭였다. ‘텡그리’는 천신(天神)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몽골 식 ‘고수레’다. 소변 마려워서 일어섰더니 에르데네가 팔다리를 좌악 벌리고
서서 우리가 더러 그러듯이 입구를 막으면서, 더 안 마시면 못 나간다고 떼를 썼다.

달빛 아래로 술 자리를 옮겼다. 천막집 게르를 숙소로 빌려준 브리야트 족 안주인도 합류했다. 수
줍음을 몰랐다. 멀리서, 달빛 교교한 초원을 가르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게르 주인
말치기였다. 물론 초면이었다. 그 역시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갓 배운 노래 ‘나의 아버지는 말
치는 사람’을 내가 선창했다. 에르데네 씨가 엄청난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테너로 따라
붙었다. 주인집 내외도 거침없이 따라왔다. 내 소리는 그들의 소리를 뚫지 못했다. 달빛 아래서 유
라시아 인들이 벌인 그 황홀한 술잔치, 노래 잔치 자리에서 나는 너무 아득해서 그만 울음을 터트
리고 말았다.

이튿날 몽골 인 친구에게 가사의 내용을 물었다. 그냥 들었을 뿐 메모는 하지 않았다. 돌아온 뒤에
도 나는 술만 마시면 늘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이로써 많은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만들었을 것이
다.

몽골은 자동차로 여행하기에는 너무 넓은 나라다. 자동차 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을 두루 답사
하기 위해 2003년 여름에는 여럿이 추렴하여 헬리콥터를 빌렸다. 조종사의 이익과 여객의 이익은
상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달밤에 함께 이 노래, ‘미니 아아브 아도칭 훈’을 부름으로써 우리
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노래 불러도 좋은 곳이면 어디에서든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몽골인들로부
터 박수를 받았다. 이 노래를 모르는 몽골 인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한 것은 가락과 노랫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몽골어를 잘 아는 이로부터 노랫
말을 정확하게 해석한 쪽지를 받고는 더욱 놀랐다. 미니(나의) 아아브(아버지) 아도칭(말치는) 훈
(사람), 미니(나의) 아아브(아버지) 도오칭(노래하는) 훈(사람)…. 어순(語順)이 우리 말과 거의 같
다. 우리 말과 같은 알타이 어에 속하는 언어라서 그렇단다. 그들이 쓰는 말뿐만이 아니다. 몽골
에 가면 너무나 눈에 익은 몸짓을 보고, 너무나 귀에 익은 말을 듣게 된다. 이 낯익음도 학습을 통
한 낯익음인 것인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학습을 통한 낯익음’이 아닌, ‘원초적 낯익음’으로 부르
려고 한다.

‘알타이’는 몽골 고원에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말에 관한 한, 알타이 어는 조선, 일본, 몽골, 심지
어는 유럽에 속하는 터키, 헝가리까지 아우른다. 나는 누구인가? 알타이 말을 쓰는 사람이다. 알타
이 말이란 무엇인가? 알타이 인이 사는 ‘존재의 집’이다. 알타이 신화는 무엇인가? 알타이 문화의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 아닌가? 우리 옛이야기의 고향을 찾아 벌써 여러 차례 나는 유라시아를
떠돌았다. 한동안 몽골에 머물다 만주로 떠나려 한다.


        



관련글보기

제목 작성자 날짜
유랑에세이 - 몽골(1) 이윤기
     

Copyright (c) 2001~ Dui-korea. All right reserved